2009/07/03 09:08
[좋은 책 감상]
미국의 부동산 거품으로 일어난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정부의 일을 대부분 민간에 맡기면 경제가 살아난다던 민영화식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각국 정부가 무제한 지급 보증과 구제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정부의 역할이 시장경제에서 필요하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없는상황에서 단기성과에 급급했던 전문경영인들이 벌인 모럴 해저드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이제 전세계는 선택의 여지 없이 주택담보대출 및 파생상품 부실을 치유하기 위해, 시장에서 국가의 역할을 키우고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정부의 개입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은, 여전히 감세정책에 이은 정부역할 축소로 나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 책의 글쓴이 이준구 교수님은 베스트셀러 [미시경제학] 교과서를 집필하고 계시는 한국 최고의 경제학자 중 한 분입니다. 시장경제는 정부가 통제하는 것 보다 민간에 맡겨야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시장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보수적인 경제학자이시며, 비록 특정 직업군들의 피해가 있으나 자유무역의 혜택이 너무나 크기에 각 국가들과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자유무역론자 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준구 교수님은 현재 정부의 경제 정책이 일반적인 경제학 상식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감세를 하면 경기가 좋아진다는 현 정부의 정책이 주요한 대상입니다. 감세정책이 오히려 경기활성화를 낳아 세금수입을 증가시키는 만병통치약임은 아서 래퍼가 주장하기 시작하고, 미국 레이건 정부 때 국가적인 슬로건으로 활성화 된 논리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달랐습니다. 감세정책은 전체 인구 중 세금을 많이 내는 소수에게 혜택을 줄 수 밖에 없는 정책이기에, 소비진작을 통한 내수활성화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수감소로 인해 정부의 재정적자가 발생하면서 채권을 찍어내야 했고, 채권발행으로 높아진 금리는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압박하여 경제에서의 대기업-중소기업간 밸런스도 파괴하였습니다. 여전히 남아있는 감세정책의 환상에 젖은 여러 정치적 구호에도 불구하고 감세정책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경제학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래퍼 곡선은 경제학계에서 사실상 사장되었습니다.
2009년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 정부가 없애고 있는 세금은 종부세, 상속세, 소득세이며, 이 세금을 없애서 발생하는 재정적자는 담배와 술에 매기는 세금과 재산세에서 메꾸려는 계획입니다. 상대적으로 앞의 세금은 전체 국민들 중 소수가, 뒤의 세금은 전체 국민들 중 다수가 내는 세금입니다. 이준구 교수님은 종부세 폐지 -> 재산세 증세에서 부동산 소유자 2%의 세금을 깎아서 부동산 소유자 98%에게 세금을 걷는것과 같다고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소득세 역시 대부분의 저소득층은 아예 납부를 하지 않는 세금이지만, 간접세인 담배, 술에 관한 세금은 고소득층 못지 않게 지출하고 있습니다.
상속세의 경우에는 상속세를 폐지하면 중소기업들이 상속세 납부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사업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업가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걸 보면 그저 궁색한 논리일 뿐입니다. 자녀에게 자기가 가꾼 사업을 물려주고자 하는 건 어느 나라던 마찬가지지만, 과거 가내수공업 시대와 달리 현대 기업은 여러 복잡한 사업부를 가지고 복잡한 외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자녀들이 기업을 계승하더라도 기업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기업들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던 문화에서, 지분만 보유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하는 문화로 바뀐 것은 미국인들에게 상속본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자녀보다 전문경영인의 성과가 더 나았다는 실리적인 이유였습니다.
글쓴이는 이러한 상황을 개탄하며, 그간 정부가 예전 노무현 정부와 너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려다 보니 기존의 상식적인 정책도 파괴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장기적인 잠재성장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준구 교수님 말씀마따나 경제학은 "오른 경제"가 아니라 "옳은 경제"가 되어야 합니다. 감세혜택의 70%가 서민에게 돌아가며 스스로 중도라고 생각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나니 더욱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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